FEATURE · 칼럼
카라오케 화면에서 쿠로페스까지, 오카모토 노부아키가 음악을 전하는 방법

나이트메어(NIGHTMARE)를 알리기 위해 카라오케 대기 화면을 찾고, 페스티벌에서는 한 가수에게 대표곡 한 곡만 부르는 무대를 제안한다. 오피스워커의 오카모토 노부아키(岡本伸章)가 2016년 SPICE 인터뷰에서 들려준 일화들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음악을 처음 접할 관객을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어떤 경로로 이름을 보게 할 것인지, 공연장에서는 무엇을 듣고 싶어 할 것인지가 홍보와 기획의 출발점이 된다.
2016년 8월 26일 공개된 SPICE의 『The Producers』 제7회 인터뷰는 그의 밴드 시절부터 레코드사 홍보, 매니지먼트와 행사 기획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 글은 그 대화를 바탕으로 활동의 몇 장면을 짚는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당시의 고민과 사례를 따라가면, 오카모토가 강조한 ‘각오’도 추상적인 결심보다 사람과 일을 맡은 뒤 이어지는 실무의 언어로 들린다.
나고야의 드러머가 레코드사에 들어가기까지
오카모토는 나고야의 기타 록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한 달에 몇 차례 도쿄에서 공연하고 여러 지역을 투어하며 프로를 목표로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가구 회사에 취직했고 밴드 활동을 병행했다. 이후 프로덕션의 제안을 받아 계약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던 시도는 약 2년간 이어졌지만, 소속사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그는 무대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려던 계획을 접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함께했던 전문가들도 자신의 밴드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한다. 다음 일자리를 찾을 때 다시 떠올린 것도 음악이었다. 구인 정보지에서 일본크라운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나고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표면에 서는 역할은 끝났지만, 음악을 관객에게 전하는 일은 다른 자리에서 이어졌다.
지역 영업소에서는 팝과 엔카를 함께 담당했다. 나고야역 앞 엔카 전문점에서 매장 행사를 진행한 뒤 록 밴드 공연장에서 CD를 판매하는 일정도 일상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만 다루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장르의 현장과 판매 방식을 함께 경험한 그는 나고야에서 반년 남짓 근무한 뒤 도쿄로 이동했고, 나이트메어의 홍보를 맡게 됐다.
방송 출연이 어렵다면 음악을 볼 다른 화면을 찾는다
도쿄에서 처음 담당한 나이트메어는 오카모토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다. 그는 브리티시 계열의 록을 좋아했고 비주얼계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고 돌아본다. 그러나 함께 움직이며 밴드가 기울이는 노력을 가까이서 보게 됐다. 당시 일부 유명 팀을 제외한 비주얼계 아티스트는 방송과 도쿄 FM 출연의 문턱이 높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출연이 어렵다는 답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접점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일본크라운의 모회사 다이이치코쇼가 운영하는 카라오케 체인 빅에코였다. 대기 시간에 추천곡 영상을 보여주는 편성에 나이트메어를 제안했고, 여러 제안 중에서 그들의 영상이 선택됐다. 전국 매장의 포스터와 대기 화면을 통해 밴드 이름과 뮤직비디오가 반복해서 눈에 들어가는 기회가 생겼다. 공연과 매장 행사를 늘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날 자리를 만든 셈이다.
다이이치코쇼가 제공하던 FM 프로그램과도 연결됐다. 오카모토는 시부야 스페인자카 스튜디오 공개 녹음에 300명 이상이 모였다고 회고한다. 이미 공연을 보러 오는 팬이 있어도 매체에서 주목받기 어려웠던 밴드의 인기를, 공개된 현장에서 보여줄 기회였다. 그는 이 과정을 한 번의 돌파보다 조금씩 인지도가 퍼져가는 경험으로 설명한다. 영상이 보이는 화면과 방송이 열리는 장소를 찾아간 구체적인 일화가 홍보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규모가 다른 두 밴드에게서 배운 것
그는 같은 시기에 기타 록 밴드 UNDER THE COUNTER도 맡았다. 인터뷰에서 한쪽은 100~200명 규모의 관객을 만나는 신인이고, 다른 한쪽은 3,000명의 열성 팬이 있지만 매체 진입이 어려운 팀이었다고 대비한다. 필요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는 공통적이었다. 두 팀을 함께 담당한 경험은 이후 홍보 업무의 기초가 됐다고 말한다.
UNDER THE COUNTER의 매니저와는 오사카 FM 방송국, 당시의 『피아 간사이판』, 간사이 타워레코드를 연결하는 기획을 진행했다. 라디오 DJ가 매장의 코멘트 카드를 쓰고, 잡지에 소개하며, 방송에서 라이브 초대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각 매체가 따로 움직이는 대신 다른 접점을 향해 관객을 안내했다. 빅에코 사례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대한 열의를 실제 노출과 방문으로 이어줄 경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각오’라는 말 옆에 놓인 숫자
오카모토는 27세에 일본크라운을 떠나 오피스워커 그룹으로 옮겼다. 그룹이 에이벡스와 공동 운영하던 레이블 블로우그로우에서 일했고, 인터뷰에는 당시 J와 키리토의 활동도 언급된다. 이후 매니지먼트에 필요한 자세를 묻는 질문에 그는 ‘각오’를 먼저 들었다. 아티스트의 삶에 함께하는 일인 만큼, 자신의 판단을 믿고 맡았다면 마지막까지 책임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가 그리는 책임에는 대화와 정보 공유가 따라온다. 아티스트에게 좋은 숫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결과도 전하고, 팬클럽 회원 수와 굿즈 회전율, 객단가 등 운영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의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함께 활동을 결정하는 사람이 현재의 조건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과가 좋지 않을 때에도 설명을 미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오’는 실제 업무와 이어진다.
그는 경영자가 된 뒤에도 아티스트와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더 크다고 답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과 이상을 갖고 있는지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아이디어도 나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일하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무즈무즈’, 곧 마음이 들뜨고 신경 쓰이는 감각을 표현으로 쓴다. 동시에 당시에는 이미 함께하는 아티스트에게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관심이 생기는 일과 실제로 시간을 맡기는 일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쿠로페스에서 관객이 듣고 싶은 한 곡
인터뷰 후반의 쿠로페스 이야기는 이런 판단을 공연 기획으로 옮겨 보여준다. 마츠자키 시게루의 45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이 행사를 오카모토는 텔레비전과 음악 페스티벌 사이의 자리로 설명한다. 텔레비전에서 익숙한 사람의 실제 노래를 눈앞에서 듣고, 대표곡을 알던 가수의 무대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하는 공연이다. 음악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출연진 구성에도 반영됐다.
그래서 출연 시간을 일률적으로 배분하지 않았다. 오토모 고헤이가 「ff(포르티시모)」 한 곡을 부르고 무대를 마친 사례를 들며, 관객이 기대하는 곡과 공연 전체의 흐름에 맞춰 분량을 제안했다고 말한다. 한 팀의 긴 세트보다 연달아 마주치는 무대의 변화를 선택한 구성이다. 당시 타임테이블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도 이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하려는 자신의 기획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관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바꾼 것도 있었다. 마츠자키가 다니던 교자집 가족에게 행사를 알렸을 때, 나이 든 사람에게 스탠딩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벤치형 좌석 구역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가수를 지지한 사람도 공연에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대표곡 한 곡의 분량과 잠시 앉을 수 있는 자리처럼, 공연의 인상은 서로 다른 크기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카라오케 대기 화면에서 밴드 이름을 알리고, 페스티벌에서는 익숙한 가수의 노래를 눈앞에 놓는다. 오카모토의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아티스트를 믿는다는 말을 관객이 음악을 만날 장면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각오’도 그 구체적인 일들 곁에서 다시 읽힌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현재의 조건을 설명하고, 관객이 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맡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이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