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김범수 「보고 싶다」, 그리움의 크기와 붙잡을 수 없는 거리

노래방 번호
김범수의 「보고 싶다」는 짧은 제목을 크게 펼치지만 그 말로 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는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가창의 강한 인상만 따라가면 곡은 그리움을 크게 증명하는 노래로 남기 쉽다. 그러나 사랑을 이유로 상대를 붙들어둘 수는 없다는 거리까지 함께 읽으면 보컬의 힘은 다른 무게를 얻는다. 감정이 크다는 사실과 그 감정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이 노래의 절실함은 둘을 쉽게 합칠 수 없는 상황에서 들린다.
Kim BumSoo - I Miss You | 김범수 - 보고싶다 [Yu Huiyeol's Sketchbook]
보고 싶다는 말이 관계를 되돌리지는 않는다
보고 싶다는 말에는 무엇을 느끼는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설명을 더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같은 말을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받아줄 수 있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다르다. 곡의 반복은 이 차이를 지워주지 않는다. 말이 되돌아올수록 원망이나 간청, 스스로를 말리려는 마음이 다른 비율로 함께 들릴 수 있다. 감정의 이름은 단순한데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은 셈이다. 제목의 친숙한 말이 음악 안에서 길어지는 이유를 바로 그 간격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판단이 그리움을 즉시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마음과 태도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다. 만나고 싶지만 붙잡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태다. 이를 무조건 숭고한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감정의 무게는 남는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하는 사람의 말로 읽을 때 곡은 가까워진다. 청자도 자기 경험을 완벽한 희생이나 극복의 이야기로 고쳐놓지 않은 채 음악 안에 둘 수 있다. 정리한 결심 뒤에도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듣는 시간이다.
목소리의 확대와 감정의 해결을 나누어 듣기
김범수의 보컬은 감정을 넓은 소리로 보내지만 그 확대가 곧 해소는 아니다. 크게 말한 뒤에도 같은 바람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음에 얼마나 높이 도달하는지보다 한 구절이 다음 말로 무엇을 가져가는지 따라갈 수 있다. 강한 순간 앞에 놓인 조심스러운 말이 기억에 있어야 고조에도 변화의 폭이 생긴다. 목소리의 기량을 곡 밖으로 꺼내 감탄하는 감상과 그 힘이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지 듣는 감상은 다르다. 후자를 따라가면 큰 소리 안에서도 관계를 바꾸지 못하는 무력함이 함께 들린다.
반주의 확대 역시 목소리가 혼자 감정을 증명하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곡이 마련한 흐름 안에서 같은 말이 다른 크기를 얻는다. 듣는 귀는 앞에서 들었던 문장을 기억한 채 뒤의 소리를 만나므로 고조는 갑작스러운 장식보다 축적된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모든 감정이 마지막 큰 소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만 볼 필요도 없다. 작은 말의 거리가 중요한 순간은 끝까지 남는다. 소리가 커지는 방향과 상대에게 실제로 가까워지는 방향은 같지 않다는 점이 음악의 힘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익숙한 노래를 자신의 시간으로 다시 만나기
《천국의 계단》의 기억으로 곡을 만난 사람에게는 먼저 떠오르는 화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 없이 다시 들으면 자신의 경험이 그 자리에 들어올 수도 있다. 익숙한 후렴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 같은 마음으로 듣는다는 사실은 다르다. 「보고 싶다」를 다시 찾을 때마다 제목의 말이 향하는 얼굴과 거리는 달라질 수 있다. 곡은 그 감정에 답을 주기보다 말할 수 있는 크기를 마련한다.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남지만, 그 마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관계의 자리도 함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