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한 사람을 색으로 기억하는 윤건의 「갈색머리」

노래방 번호
윤건의 「갈색머리」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 모든 장면이 같은 선명도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을 불러온다. 얼굴 전체나 긴 대화보다 색 하나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제목의 갈색은 그 사람을 대신하는 작은 단서이면서 다른 기억이 모여드는 자리다. 따뜻한 색이라는 인상만으로 곡을 설명하면 부재의 거리는 놓치기 쉽다. 가까운 목소리로 기억을 건네도 떠올리는 사람은 지금 곁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소리의 온도와 관계의 거리가 다르다는 점이 이 곡의 다정하면서도 쓸쓸한 인상을 만든다.
갈색머리
사람 전체보다 먼저 돌아오는 작은 특징
머리카락의 색은 누군가를 설명하는 많은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리움 속에서는 작은 특징 하나가 사람 전체를 불러오는 통로가 된다. 제목에 사랑이나 이별 대신 색을 놓았을 때 감정은 추상적인 이름보다 구체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청자는 곡 속 인물의 실제 모습을 모르더라도 자신의 기억에서 먼저 돌아오는 부분을 떠올릴 수 있다. 누구에게는 목소리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손짓일 수 있다. 제목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과 만날 여지가 생긴다.
기억의 단서는 눈앞의 사람을 온전히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한 부분이 선명해질수록 나머지가 흐려졌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색이 남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간직했다는 확신과 다르다. 「갈색머리」를 이 거리에서 들으면 따뜻한 이미지 안에도 시간의 흐름이 들어온다. 그리운 사람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겼기에 작은 특징을 붙드는 마음일 수도 있다. 구체적인 단서와 불완전한 기억이 함께 있다는 점이 제목을 단순한 수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말의 온도와 관계의 거리는 다르다
윤건의 가까운 음색은 기억을 멀리서 해설하는 말보다 조용히 꺼내놓는 말처럼 느끼게 한다. 소리의 큰 순간만 기다리지 않고 한 구절이 남긴 온도가 다음 말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들을 수 있다. 편안한 인상이라고 화자가 이미 편안해졌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말 안에도 돌아갈 수 없는 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의 담백함은 감정이 적다는 뜻보다 그리움을 모두 큰 몸짓으로 번역하지 않는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까이 들을수록 말 뒤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한 사람의 기억을 떠올리는 노래에서는 청자가 자신의 장면을 겹치는 일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나 누구나 같은 색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제목의 이미지가 정답을 지시하기보다 각자의 기억을 여는 입구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색을 따뜻함이나 쓸쓸함 하나로 고정하지 않으면 노래의 표정도 넓어진다. 곁에 있었을 때의 반가움과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 같은 이미지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목소리의 가까움은 둘 중 하나를 지우는 대신 그 두 시간을 함께 바라볼 자리를 마련한다.
기억 속 색이 지금의 귀에 닿을 때
다시 들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예전과 다르다고 기억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의 마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선명해지는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갈색머리」가 불러오는 사람 역시 고정된 사진으로만 남지 않는다. 가까이 불러보는 이름과 그 이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함께 있다. 노래가 끝난 뒤 머릿속에 색 하나가 남는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전부 되찾았다는 표시보다 아직 그 사람에게 이어지는 단서가 있다는 감각일 것이다. 윤건의 목소리는 그 작은 단서를 조용히 현재의 귀 앞으로 가져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