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10cm 「스토커」의 고백은 왜 자신에게 돌아오는가

노래방 번호
10cm의 「스토커」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먼저 꺼낸다. 상대에게 다가가기 전부터 스스로 탈락을 선언하는 고백이다. 그래서 이 노래의 아픔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정에만 있지 않다. 상대를 높이 올려놓을수록 자신이 머물 자리가 좁아지고, 마음을 설명하려는 말이 다시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 돌아온다. 잔잔한 멜로디를 따라가면서도 편히 위로받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비대칭에 있다.
십센치 / 10cm - '스토커 (Stalker)' Official Music Video
상대를 바라보다 자신을 지우는 말
화자가 상대의 남자친구와 자신을 견주는 대목에서는 짝사랑이 일종의 자격 심사처럼 바뀐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사람 곁에 설 조건을 갖췄는지가 앞서는 것이다. 이때 상대는 구체적인 대화의 주체가 되기보다 화자가 닿지 못하는 세계의 중심으로 남는다. 사랑을 말하는 문장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실제 교류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래는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과 이미 멀다고 믿는 마음을 한자리에서 들려준다.
자기비하는 겸손한 고백과도 다르다. 자신을 낮추면 거절의 상처를 미리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노래에서는 그 말이 거듭될수록 빠져나올 통로가 사라진다. 상대를 원망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자신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태도가 겹치면서 감정은 제자리에서 맴돈다. 권정열의 목소리가 전하는 애절함을 따라가되, 그것을 곧바로 가수의 실제 경험이나 성품으로 옮겨 읽지 않을 때 화자라는 인물의 막막함이 더 또렷해진다.
연민이 상대의 마음을 대신할 수 없을 때
「스토커」라는 제목은 이 고백에 쉽게 낭만적인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화자는 자신의 마음이 상대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 듣는 사람은 간절한 사람의 입장만으로 노래를 끝까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한쪽에서 오래 품었다는 사실이 다른 쪽의 응답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노래의 긴장은 감정의 크기와 관계의 성립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끝내 지우지 않는 데서 생긴다.
잔잔한 노래의 결은 이러한 불편함을 더 가까이 가져온다. 자극적인 제목을 격렬한 소리로 밀어붙이기보다, 일상적인 슬픔처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놓기 때문이다. 익숙한 짝사랑의 언어에 공감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그 시선이 상대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는 화자를 악인으로 단정하거나 무조건 이해하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괴로움을 듣는 일과 그 괴로움이 향하는 방향을 살피는 일이 함께 필요하다는 뜻이다.
고백이 멈춘 자리의 거리
노래가 남기는 것은 이루어질 사랑에 대한 약속보다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의 막힌 시야에 가깝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상대를 떠나지 못한다. 그 어긋남을 그대로 두기에 「스토커」는 짝사랑의 위로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다시 떠올려볼 것은 얼마나 절실히 사랑했는지가 아니라, 그 절실함 속에서 상대와 자신이 각각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가다. 고백의 아름다움보다 관계의 거리를 묻는 여운이 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