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카키 킹의 ‘Ritual Dance’, 영화 속 손끝에서 다시 만난 마이클 헤지스

《어거스트 러쉬》의 기타 장면으로 ‘Ritual Dance’를 만났다면, 먼저 이름 두 개를 나란히 놓아볼 만하다. 화면 밖에서 연주한 사람은 카키 킹이고 작품을 쓴 사람은 마이클 헤지스다. 한 사람의 곡이 다른 연주자의 손을 거쳐 영화 속 소년의 음악이 되었다. 이 세 자리를 구분하고 보면, 천재가 악기를 만나는 장면은 이미 존재하던 작품이 새 몸과 이야기를 얻는 순간으로도 보인다.
영화는 악기를 처음 만나는 듯한 놀라움을 관객에게 건넨다. 반면 곡에는 영화보다 앞선 시간이 있다. 헤지스의 앨범 《Taproot》에서 ‘Ritual Dance’는 자기만의 서사를 지닌 작품이었다. 제목의 의식을 막연한 신비로 해석하기보다 그 이름이 처음 놓였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영화의 감동 밖에서도 이 짧은 연주를 만날 길이 열린다.
August Rush - Playing in the park "Ritual Dance by Kaki King"
기적의 장면 뒤에 있는 연주자
킹은 이 영화에 음악을 보탰고 기타를 연주하는 손의 대역으로도 참여했다. 인물이 낼 법한 소리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몸까지 화면의 일부가 된 것이다. 관객이 보는 소년의 발견과 실제 연주자의 작업은 같은 장면에 포개진다. 손이 악기에 닿는 모습을 감탄하며 볼 때, 그 손을 가진 음악가의 이름도 함께 기억할 이유다.
연기를 보면서 음악에 반응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화면은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가리키고, 소리는 그 몸짓이 어떤 사건인지 결정한다. ‘Ritual Dance’에서는 곡을 알아가는 귀와 악기를 발견하는 인물의 시선이 한동안 겹친다. 익숙한 기타가 새 물건처럼 보이는 감각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입구다.
제목에는 이미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헤지스는 《Taproot》를 설명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든 신화의 인물과 장소, 사건을 곡명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Ritual Dance’ 역시 그 이야기 속 인물이 하는 행동이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제목은 아무 의미나 붙여도 되는 추상어가 아니다. 영화가 생기기 전부터 다른 상상의 세계에 속했던 이름이 새로운 장면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헤지스의 신화를 모두 외워야 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제목을 영화에서는 소년의 발견과 연결하고, 앨범에서는 한 인물의 여정 속 사건으로 만날 수 있다. 곡이 다른 서사에 놓일 때 감상의 초점도 움직인다.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그 감동이 작품의 출발점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
카키 킹에서 헤지스로 돌아가는 길
킹의 버전은 헤지스의 이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짧은 통로다. 두 연주를 승패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한쪽에서는 영화 속 몸짓과 소리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고, 다른 쪽에서는 앨범의 앞뒤 곡 사이에 놓인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같은 곡을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가 이후의 감상을 정하지만, 그 첫 장면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영화를 볼 때에는 소년의 손끝 뒤로 킹과 헤지스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음악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전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뜻만은 아니다. 누군가 만든 곡이 다른 사람의 손에 닿고,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Ritual Dance’가 열어놓는 놀라움은 그 연결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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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작 정보
Music Technology · Michael Hedges 인터뷰 (1991) ↗ · Kaki King · 공식 프레스 자료 ↗ · August Rush · 음악 크레디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