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Pegasus」가 바꾸는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공기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Pegasus」를 희망의 음악이라고만 부르면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는 순간의 복잡함이 줄어든다. 동료를 발견하는 반가움에는 이제 무엇이 달라질지 알 수 없다는 감각도 따라붙는다. Bear McCreary의 음악을 이 두 마음 사이에서 들으면 전함의 이름을 붙인 곡이 하나의 인상적인 만남처럼 다가온다. 광활한 우주라는 배경을 설명하는 것보다, 익숙하게 유지되던 세계의 공기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점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Pegasus
익숙한 세계에 들어오는 다른 어법
페가수스라는 이름은 우주에 떠 있는 물체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과 질서를 예고한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곧 모든 문제가 풀렸다는 뜻은 아니다. 고립과 연대의 감정도 이 차이를 남겨둘 때 더 설득력이 있다. 음악에 기대어 느끼는 안도는 낯선 상대를 향한 경계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지금까지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긴장이 동시에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맥크리리는 인터뷰에서 「Pegasus」에 미국적 악기와 어법을 사용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번 이야기는 이전과 다를 것임을 음악으로 알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 설명은 곡을 듣는 기준을 바꿔준다. 음악이 새로운 대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조정한 것이다. 특정 악기의 등장 여부를 세는 것보다 낯선 어법이 익숙한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효과에 주목할 수 있다. 변화는 화면의 사건에 앞서 귀에 닿을 수 있다.
반가운 만남을 단순한 해답으로 만들지 않기
사운드트랙에서 제목을 보며 듣는 경험과 드라마 속에서 처음 마주하는 경험도 같지 않다. 제목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새 전함을 기다리지만, 장면 안에서는 음악이 무엇을 예고하는지 아직 모를 수 있다. 그 차이는 이 곡을 단순한 인물 소개표처럼 읽지 않게 한다. 소리는 이름을 확인하기 전에 감정의 방향을 만든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느낌이 먼저 오고, 그 느낌에 들어맞는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채워진다. 음악의 역할이 정보 전달보다 넓어지는 지점이다.
광활한 공간에 홀로 남았다는 감각은 화면을 떠난 감상에서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배경에만 귀를 맡기면 새로 등장한 존재가 그 고립을 어떻게 바꾸는지 놓치게 된다. 「Pegasus」에서는 고독한 상태 자체보다 그 상태를 바꾸는 만남에 더 무게를 둘 만하다. 혼자일 때의 침묵과 누군가를 발견한 뒤의 침묵은 같은 정적이 아니다. 음악의 표정을 따라가며 이제 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때, 우주라는 배경에도 인간적인 크기가 생긴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신호
「Pegasus」의 여운은 새 동료가 생겼다는 한 문장보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예감에 가깝다. 그것을 무조건 반갑거나 불길한 감정으로 정하지 않으면 곡을 다시 들을 자리도 넓어진다. 첫 만남에서 안도로 받아들인 소리가 이후에는 긴장으로 들릴 수도 있고, 이미 아는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으면 변화 그 자체의 감각이 남을 수도 있다. 이 짧은 제목은 전함의 표지이면서 익숙한 세계에 다른 질서가 들어오는 문턱이다. 음악은 그 문턱을 먼저 열어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