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Daler Mehndi 「Tunak Tunak Tun」, 반복이 춤을 부르는 순간

Daler Mehndi의 「Tunak Tunak Tun」은 뜻을 다 알기 전에 입과 몸이 먼저 기억하는 노래다. 제목의 짧은 소리가 반복되며 하나의 리듬이 되고, 그 리듬은 영상 속 움직임과 맞물린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메흔디가 함께 춤추는 화면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을 어느새 군무를 보는 경험으로 바꾼다. 이 조합을 인터넷에서 익숙해진 재미있는 장면으로만 남겨두기에는 음악이 끌어당기는 힘이 선명하다. 반복이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다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구조를 살펴볼 만하다.
뜻보다 먼저 몸에 붙는 소리
짧은 음절이 이어질 때 청자는 모든 문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잠시 벗어난다. 먼저 따라 할 수 있는 소리가 있다는 사실이 노래의 입구를 넓힌다. 이는 가사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는 다르다. 낯선 언어의 노래도 발음과 박자의 관계를 통해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Tunak Tunak Tun」의 후렴을 떠올리면 문장을 해석한 기억보다 소리를 흉내 낸 기억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음악이 언어를 넘어가는 방식은 이런 작은 참여에서도 시작된다.
반복은 여기에서 같은 것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행동이 아니다. 다음에 돌아올 소리를 예상하게 하고 그 예상을 몸으로 맞추게 한다. 청자는 처음 들을 때보다 두 번째 들을 때 더 쉽게 끼어들 수 있다. 춤과 함께 볼 때에는 귀가 기억한 지점을 눈과 몸도 공유한다. 노래가 끝나기 전에 이미 익숙한 동작을 기다리게 되는 셈이다. 곡의 중독성이라는 말을 이렇게 풀어보면 막연한 찬사보다 구체적인 감상에 가까워진다. 무엇을 반복해서 알아보게 되는지가 중요한 질문이다.
한 사람이 여럿이 되는 화면
영상 속 여러 메흔디는 닮은 얼굴을 늘려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노래의 반복을 눈앞에 펼친다. 같은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며 청자는 차이를 찾는 동시에 공통된 움직임을 알아본다. 하나의 소리가 여러 번 돌아오는 음악과 하나의 몸이 여럿이 되는 화면이 나란히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 자아의 분열이나 철학적 합일로 확정하지 않아도 영상의 재미는 충분하다. 소리와 움직임이 같은 원리를 서로 다른 감각에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합이 명료해진다.
노래를 낯선 문화의 우스운 장면으로만 소비하면 그 조합을 만든 가수의 표현은 뒤로 밀린다. 메흔디는 영상에서 반복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움직임의 중심이다. 청자의 시선을 다른 인물에게 분산시키기보다 자신이 부르는 소리와 춤을 여러 겹으로 펼친다. 그래서 화면의 과장도 음악과 동떨어진 장식만은 아니다. 다시 보고 따라 하게 만드는 형식이 노래의 활력을 이어받는다. 재미를 느끼는 일이 작품을 가볍게 대하는 일과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다시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반복
「Tunak Tunak Tun」을 다시 들을 때에는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을 기다리는 즐거움과 소리 자체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함께 두어도 좋다. 짧은 음절이 돌아오는 지점에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화면의 반복이 그 반응을 얼마나 또렷하게 만드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곡의 매력은 디지털 시대의 혁명이라는 큰 이름보다 그 즉각적인 연결에 있다. 낯선 말도 함께 흉내 낼 수 있고 한 사람의 춤도 여럿이 공유할 수 있다. 반복은 이 노래에서 참여의 초대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