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짙은 잘 지내자 우리, 작별 인사에 남겨둔 다음 만남

노래방 번호
짙은의 잘 지내자 우리는 작별 인사처럼 들리는 말 안에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을 넣는다. 서로 각자의 생활을 잘 이어가자는 뜻이라면 담담한 안부가 될 수 있지만, 화자는 그 말 뒤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도 놓지 못한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이별을 늦추려는 태도가 같은 제목에 겹친다. 그래서 노래의 정서는 그리움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상대에게 잘 살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자신의 사과를 들을 자리를 남겨주기 바라는 마음, 그 두 바람이 얼마나 쉽게 같은 말 속에 들어가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MV] 짙은 - 잘 지내자, 우리 (사랑의 단상 Chapter 5. The Letter From Nowhere)
다가오는 사랑을 미리 잃을까 두려워하기
화자의 후회는 상대가 떠났다는 결과만을 향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먼저 물러섰던 태도를 돌아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관계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상처를 피하려던 행동이 결국 다른 상처를 만든 셈이 된다. 노래는 그 모순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의 자리에서 진행된다. 이때 과거의 아픔을 현재 행동의 면죄부로 삼지는 않아야 한다.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상대가 겪었을 시간을 이해하는 일은 또 다른 책임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을 현재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당시의 관계가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이제 자신이 왜 뒷걸음쳤는지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들어줄 상대가 같은 자리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시간차가 후회의 무게를 만든다. 아는 것이 늦게 온 사람에게는 정확한 문장조차 곧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움보다 사과의 지연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해야 할 말을 알게 되었는데 그 말을 건넬 기회는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담담한 안부에 쉽게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붙인다.
안부처럼 말하지만 남아 있는 바람
잘 지내자는 말은 상대를 놓아주는 표현이면서 자신을 붙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서로 잘 살아야 언젠가 마주할 가능성도 남는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적인 바람이 있다고 해서 그 안부가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전히 정리된 선의로만 받아들이기에는 화자의 미련이 또렷하다. 짙은의 노래가 가까이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이런 덜 정리된 말의 상태다. 듣는 사람은 상대의 행복을 빌면서 자기 자리가 조금쯤 남아 있기를 기대했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좋은 말에도 자기 바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노래는 숨기지 않는다.
재회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은 화자의 바람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상대도 같은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정하면, 노래 안에서 들리지 않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지워버리게 된다. 이 곡의 불확실함은 그 대답이 없다는 데서 더 선명해진다. 사과하고 싶다는 마음과 사과를 받아줄 의무는 같지 않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희망이 실제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 간격을 지킬 때 화자의 후회는 더 진지하게 들린다. 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확신 없이도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호칭을 당장 놓지 못할 때
제목에 남아 있는 우리라는 말은 이미 갈라진 두 사람을 문장 안에서 잠시 다시 묶는다. 현실에서는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어도 말속에서는 아직 함께인 셈이다. 잘 지내자 우리의 여운은 그 작은 불일치에 있다. 화자는 헤어진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상대를 부르는 방식까지 한꺼번에 바꾸지는 못한다. 노래는 그 시간을 미련하다고 재촉하지도 아름답다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음 만남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건네는 안부가 무엇을 담을 수 있는지 오래 들려준다. 축복과 사과와 바람이 한 문장에 남아, 작별 인사가 끝내 작별만으로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