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체인스모커스 Paris, 함께 떠나고 싶다는 말의 안과 밖

노래방 번호
체인스모커스의 Paris에서 도시의 이름은 목적지를 설명하기보다 둘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부르는 말처럼 들린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실제로 어디를 가느냐만큼 누구와 어떤 관계로 머무느냐에 걸려 있다. 부드러운 보컬과 전자음의 흐름은 그 바람을 무거운 선언으로 만들지 않고 곁에 두지만, 둘만의 세계가 언제나 안전하다는 보장까지 주지는 않는다. 함께 떠난다는 말에는 자유와 의존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의 몽환적인 인상은 현실이 사라진 결과보다 잠시 바깥을 덜 보려는 사람들의 감각으로 읽을 만하다.
The Chainsmokers - Paris (Official Lyric Video)
도시의 이름으로 부르는 둘만의 세계
파리라는 이름에는 청자가 이미 갖고 있는 낭만과 여행의 이미지가 쉽게 따라붙는다. 곡은 그 익숙함을 빌려 특정 장소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도 다른 생활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도시를 바꾸는 것과 관계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지금 있는 곳을 떠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잠시 멀리 둘 수 있으리라는 바람도 섞인다. Paris를 지리적인 여행의 노래로만 듣기보다 장소를 통해 감정을 바꾸려는 시도로 읽으면, 제목의 화려함 뒤에 남는 불안도 함께 보인다. 떠날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버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둘만의 세계는 친밀한 표현이지만 바깥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서로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에는 가까움이 커지고,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위험도 생긴다. 노래의 도피를 무조건적인 자유의 선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다. 함께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그 힘이 모든 판단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Paris의 관계는 이 양면을 품은 채 읽을 수 있다. 바깥의 현실이 답답하다는 감정과 둘 안에 머물고 싶다는 감정은 연결되어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라면 언제나 옳다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함께 떠난다는 말이 가리는 바깥의 현실
보컬과 전자음이 만드는 부드러운 흐름은 그런 불안을 선명한 갈등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청자는 곡의 분위기 안에 편하게 들어갔다가, 그 편안함이 무엇을 잠시 보지 않게 하는지 뒤늦게 생각할 수 있다. 여러 목소리가 한 정서를 공유한다는 인상은 둘만의 연대와 어울리지만, 각자의 마음이 완전히 같다는 뜻으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같은 말을 함께 부르는 것과 같은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유지하는 친밀한 온도와 관계가 가진 미정의 상태를 나란히 들으면, 곡의 몽환성은 단순한 예쁜 분위기보다 구체적인 심리의 표정이 된다.
화면을 떠올리며 듣는 경우에도 파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하나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모험의 이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잠시 숨을 곳의 이름일 수 있다. 곡은 그 장소를 실제로 소유할 수 있게 하기보다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말로 남긴다. 중요한 것은 상상이 현실을 완전히 대체하는지, 아니면 현실로 돌아갈 잠깐의 여유를 주는지다. 이 질문은 노래가 직접 판정하지 않아도 청취 속에 남을 수 있다. 떠나는 장면에만 집중할 때보다 그 뒤에도 계속될 관계를 함께 생각할 때, 둘만의 세계라는 말의 다정함과 불안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상상 속 장소에서 돌아오는 길
Paris의 여운은 현실 밖에 완벽한 장소가 있다는 믿음보다 그런 장소를 함께 부르고 싶은 욕구에 가깝다. 체인스모커스의 부드러운 흐름은 잠시 그 욕구를 공유하게 하지만, 노래가 끝나면 청자는 다시 자신의 생활에 서게 된다. 그때 제목은 멀리 있는 도시의 이름이면서 가까운 사람과 만들고 싶었던 상태의 이름으로 남는다. 도피를 비난하거나 낭만화하는 한쪽의 판단만으로는 이 감각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실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함께라는 말만으로 무엇이 해결되지는 않는지를 한 분위기 안에서 듣게 하는 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