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챔피언스리그 앤섬, 킥오프 전에 열리는 또 하나의 무대

챔피언스리그 앤섬은 경기를 설명하는 음악보다 경기장의 시간을 바꾸는 신호에 가깝다. 선수와 관중이 승부를 기다리는 동안 합창이 울리면 잠시 다른 종류의 집중이 생긴다. 어느 팀이 이길지 말하기에 앞서 지금 시작될 대회가 어떤 크기의 무대인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 UEFA가 소개하는 이 음악의 작곡가는 토니 브리튼이다. 노래의 인상을 프랑스어 이름 「Ligue des Champions」에만 묶기보다 챔피언스리그 앤섬이라는 역할로 바라보면, 여러 언어와 팀이 만나는 경기 전 장면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UEFA Champions League Anthem
경기장의 시간이 달라지는 순간
경기 전 의식에서 음악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무게를 부여한다. 관중은 결과를 알 수 없고 선수도 앞으로의 장면을 확정할 수 없다. 그 불확실성이 시작되기 직전 합창은 일상의 소음과 다른 흐름을 만든다. 큰 소리가 단지 흥분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를 바꾸는 것이다. 앤섬을 들을 때의 긴장은 이미 끝난 성취를 축하하는 기분과 다르다. 무언가가 곧 시작된다는 기대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감각이 함께 모인다. 음악은 그 짧은 사이를 하나의 장면으로 구획한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가 함께 놓인 가사는 이 노래를 한 팀의 응원가와 구별한다. 특정한 선수나 구단의 사연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대회라는 공통의 무대를 앞에 놓기 때문이다. 여러 언어가 번갈아 들려도 합창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는다. 청자가 모든 단어를 알아야만 장면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구성은 대회의 규모를 소리로 느끼게 하면서 서로 다른 소속이 한 규칙 아래 만나는 순간을 드러낸다. 경쟁할 대상들이 아직 승부에 들어가기 전 같은 음악을 함께 듣고 있다는 배치가 흥미롭다.
개별 팀을 넘어 대회를 부르는 말
앤섬의 격식은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만드는 넓은 울림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개인의 목소리를 가까이 들려주는 팝송과 달리 여러 목소리가 함께 선언하는 인상이 앞에 놓인다. 이런 표현은 선수의 사적인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경기 전체에 의례적인 크기를 부여할 수 있다. 동시에 그 격식이 실제 선수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기대가 같은 시간에 집중될 수 있는 틀이 마련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반복되는 대회의 음악에는 개별 경기의 기억이 쌓인다. 같은 앤섬을 들어도 어떤 청자는 기다리던 경기의 긴장을, 다른 청자는 이미 지나간 승리나 패배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이 그 사건들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같은 자리에 놓였기 때문에 기억을 부르는 힘을 얻는다. 이런 연결은 곡의 가사만 분석해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어디에서 언제 듣는지가 작품의 감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앤섬의 익숙함은 들은 횟수와 함께 그 뒤에 이어졌던 경기의 장면들로 만들어진다.
짧은 음악에 쌓이는 관람의 기억
음악이 끝나면 같은 울림을 듣던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팀과 역할로 돌아간다. 바로 그 전환 때문에 짧은 앤섬의 자리가 또렷하다. 서로 다른 소속이 잠시 같은 무대의 시작을 기다린 뒤 치열한 경쟁으로 나뉘는 것이다. 노래가 차이를 없애지는 않지만 차이가 만나는 장면에 격식을 준다. 챔피언스리그 앤섬을 다시 들을 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웅장함만이 아니다. 아직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경기 전의 시간, 어떤 장면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합창의 마지막 울림과 함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