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중식이 나는 반딧불, 작아진 이름에도 남는 빛

노래방 번호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은 자신을 부르던 이름이 바뀐 뒤에도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묻는 노래로 들을 수 있다. 멀리 있는 별을 상상하던 시선이 가까운 작은 생명으로 돌아올 때, 기대했던 모습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는 분명한 낙차가 생긴다. 곡은 그 낙차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크기와 이름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빛까지 사라졌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자존을 되찾는 과정이 더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명 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고르는 일로 놓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SUB] 중식이 - 나는 반딧불
이름이 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
별과 반딧불은 모두 빛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람들이 부여하는 위상은 다르다. 한쪽에는 높이와 거리, 동경이 따라붙고 다른 한쪽에는 작고 가까운 생명의 크기가 남는다. 노래는 그 차이를 이용해 자기 평가가 얼마나 이름과 기대에 기대어 있는지 보게 한다.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발견은 아플 수 있지만, 그것이 존재의 가치를 모두 판정하는 기준일 필요는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빛을 알아보는 시선이 생기면 낮아졌다고 느꼈던 자리에서도 다른 감각이 시작된다.
이런 수용을 처음부터 아무 상처도 없었다는 평정으로 읽기는 어렵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다음에야 다시 말을 건네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의 긍정은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밝은 표어와 다른 무게를 갖는다. 다만 이 감정을 가수의 실제 인생 전부와 동일하게 놓을 필요는 없다. 화자가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장면에 집중하는 편이 작품의 언어에 가까이 간다. 노래가 열어두는 공감도 특정한 성공과 실패의 목록을 공유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다시 평가하는 노래의 시간
같은 이미지가 되돌아올 때 청자는 처음의 판단을 다시 통과한다. 이미 결과를 알더라도 기대와 발견, 수용의 순서를 따라가며 자신을 평가하는 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듣게 된다. 반복의 힘은 새로운 정보를 계속 주는 데 있지 않다. 한 번 이해했다고 끝나지 않는 감정을 다시 말해볼 시간을 마련하는 데 있다. 자신에게 건네는 긍정이 늘 단번에 믿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익숙한 선율을 거듭 따라가는 경험도 마음의 기준을 천천히 바꾸는 과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원곡과 다른 가수의 버전을 함께 듣는 일은 같은 이름과 이미지가 목소리에 따라 어떤 거리를 얻는지 살펴보는 방법이다. 중식이의 곡을 황가람이나 다른 가수의 해석과 한데 섞어 하나의 녹음처럼 설명해서는 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부르는 버전인지 먼저 구분하고 감정의 호흡을 따라가면, 익숙한 메시지도 새롭게 들릴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진실한지 판정하기보다 같은 말을 자신의 몸으로 전달하는 방식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원곡과 재해석 모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작은 빛을 다른 목소리로 만날 때
나는 반딧불이 남기는 빛은 더 큰 별이 되겠다는 보상과 거리를 둔다. 지금의 이름과 크기를 인정한 뒤에도 자신을 함부로 무가치하게 부르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노래를 통해 얻는 위로도 미래의 성공을 대신 약속받는 경험보다 현재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작은 변화일 수 있다. 중식이의 원곡을 들을 때 그 변화의 방향을 따라가볼 만하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상상만이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까이 있는 빛을 알아보는 시선 역시 삶의 자리를 달라지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