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린킨 파크 ‘In the End’, 같은 실패를 나누어 말하는 두 목소리

노래방 번호
린킨 파크의 ‘In the End’는 짧은 피아노 모양과 두 목소리를 함께 기억하게 한다. 마이크 시노다의 랩을 따라가던 귀가 체스터 베닝턴의 후렴으로 옮겨가면 말의 시간도 달라진다.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어도 한쪽은 문장을 계속 밀고 가고 다른 쪽은 그 문제에 남은 감정을 크게 펼친다. 처음부터 하나의 표정으로 합쳐지지 않는다는 점이 곡을 움직인다.
2000년 데뷔앨범 《Hybrid Theory》의 여덟 번째 곡이다. 앨범이 결합한 하드록과 힙합의 보컬, 전자적인 소리는 이 곡에서 이름뿐인 장르 혼합으로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말하기 방식이 한 곡의 구조를 나누어 맡는다. 노력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마음이 두 목소리를 거치면서 같은 길이 아닌 두 경로를 얻는다.
이미 아는 모양이 다음 소리를 기다리게 할 때
도입에서 익힌 짧은 소리가 있으면 청자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 다 알지 못해도 곡을 따라갈 기준을 갖는다. 리프가 먼저 만든 친숙함 위에 빠르게 이어지는 말과 큰 후렴이 놓인다. 새로운 소리가 들어올 때마다 출발점을 잊는 대신 앞서 들은 모양과의 관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은 반복이 곡의 넓은 움직임을 받아주는 자리다.
그 관계를 감정에 겹쳐보면 같은 일을 자꾸 되짚는 사람의 모습도 떠오른다. 말을 많이 했고 소리도 커졌는데 처음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반복은 사건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표시보다 그 사건들을 겪고도 같은 생각으로 돌아온다는 상태에 가깝다. 익숙한 피아노가 곡 안의 변화를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이유다.
설명하는 시간과 받아들이는 시간
공식 크레디트는 시노다의 MC·샘플·보컬과 베닝턴의 리드 보컬을 구분한다. 이 두 자리를 따라 들으면 장르의 구분이 한 사람의 마음을 나누는 방식으로도 읽힌다. 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도 후렴에 이르면 그것을 감당하는 마음은 다른 크기를 필요로 한다. 이해한 사실과 받아들인 감정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두 목소리를 이성과 감정이라는 고정된 역할로 나눌 필요는 없다. 랩에도 감정이 있고 후렴에도 명확한 말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결론을 향해 가는 동안 표현의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짧게 끊어 이어가는 문장과 넓게 펼치는 문장이 한 곡 안에서 번갈아 오며, 끝난 일을 설명하는 사람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이 있음을 들려준다.
결과가 노력을 지우지 못하는 자리
이 곡의 허무를 곧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해석하면 노력과 실망이 부딪히는 자리는 작아진다. 애썼다는 말이 결과를 바꾸지는 않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애썼던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노래는 두 사실을 쉽게 화해시키지 않은 채 함께 놓는다. 청자는 자신의 일을 그럴듯한 성장담으로 다시 쓰지 않아도 곡 속 문장에 머물 수 있다.
다시 피아노가 시작될 때 기억하는 것은 문제의 해답만은 아니다. 같은 마음을 말하는 방식이 둘 이상 있었다는 사실도 남는다. 시노다와 베닝턴의 다른 표현을 통과한 짧은 반복은 처음의 소리이면서 그 사이의 말을 품은 소리다. ‘In the End’는 끝이라는 제목 안에서 이미 끝난 사건과 아직 진행 중인 감정이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한다.
관련 자료
음원·제작 정보
Warner Records · In the End 공식 음원 크레디트 ↗ · Rhino · Hybrid Theory 공식 앨범 정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