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OSSWAVE EDITION

REVIEW · 음악·음반

레시피가 리듬이 되는 The Real Group의 「Chilli Con Carne」

발행 2025-04-04 · 편집 갱신 2026-10-25 · CROSSWAVE EDITION

레시피가 리듬이 되는 The Real Group의 「Chilli Con Carne」
ARTISTThe Real GroupWORKChilli Con CarneFORMAT음악 리뷰

The Real Group의 「Chilli Con Carne」에서는 요리 이름이 곧 음악을 움직이는 말이 된다. 재료와 과정을 따라가는 언어는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와 다른 방식으로 귀를 붙든다. 다음에 무엇을 넣을지 기다리는 마음과 다음 소리를 기다리는 귀가 같은 흐름에 놓인다. 여러 목소리가 리듬과 화음을 나누는 아카펠라도 이 주제와 어울린다. 한 재료만으로 요리가 완성되지 않듯 하나의 선율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까지 함께 들을 때 재미가 드러난다. 익숙한 주방의 언어가 여럿의 목소리를 만나 다른 형태로 살아나는 곡이다.

VIDEO · YOUTUBE

Chili Con Carne

YouTube에서 보기 ↗

음식의 이름을 음악의 재료로 듣기

레시피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말이다. 그러나 노래 안에서는 단어가 정보이면서 소리도 된다. 재료 이름과 제목을 따라가면 뜻을 알아듣는 귀가 발음의 길이와 리듬에도 반응한다. 글로 읽을 때 지나칠 음절이 음악에서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유쾌함은 요리를 엉뚱한 소재로 골랐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평소에는 지시로 받아들였던 말을 선율과 박자로 듣는 변화에 있다.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는 즐거움과 어떻게 들리는지 느끼는 즐거움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난다.

재료를 더하는 과정과 소리를 겹치는 과정이 닮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 조리 순서를 곡의 구조와 하나씩 대응시킬 필요는 없다. 다른 요소가 제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만든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제목을 부르는 목소리 밖에서도 소리는 움직이고 귀는 무엇을 먼저 들을지 계속 선택한다. 첫 재생에서 모두 따라잡지 못한 역할을 다음에 발견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친근한 노래를 알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뒤의 성부를 따라가면 익숙한 표면 안에 새로운 움직임이 보인다.

악기 대신 무엇이 있는가

아카펠라를 악기가 없는 음악이라고만 설명하면 이 곡의 풍성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보다 목소리가 무엇을 맡는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는 선율과 박자를 붙드는 소리, 사이를 채우는 화음이 같은 인간의 목소리로 다른 기능을 한다. 악기 이름을 하나씩 붙이지 않아도 그 관계는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소리가 바탕과 표면을 동시에 만든다는 점에서 음악은 가깝고도 낯설다. 한 목소리만 멋있게 듣는 감상에서 여러 소리가 서로를 받쳐주는 관계로 귀가 옮겨간다.

가볍게 들리는 결과를 위해 성부들은 함께 시간을 나누어야 한다. 즐겁게 부르는 인상과 세밀하게 맞물리는 구조는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이 또렷하기에 청자는 복잡함에 붙들리지 않고 리듬을 편하게 따라간다. 쉽게 들린다는 사실이 구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구성이 즐거움 안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는 뜻에 가깝다. 제목을 흥얼거리는 동안 다른 목소리가 어느 자리를 지키는지 귀를 옮겨보면, 농담처럼 다가왔던 곡에도 정교하게 나누어진 움직임이 함께 들린다.

즐겁게 들리는 음악을 다시 세밀하게 듣기

친숙한 발음이나 유머로 처음 만났더라도 다시 들을 때에는 다른 입구를 고를 수 있다. 웃음을 지워야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말 뒤에서 무엇이 박자를 지키는지 살피는 즐거움도 함께 갈 수 있다. 곡이 끝난 뒤 남는 것은 완성된 요리의 모습보다 여럿이 무언가를 만들던 시간의 감각이다. 다음 재생에서 제목과 다른 성부까지 함께 흥얼거리게 된다면 레시피는 정보의 형태를 지나 음악이 된 셈이다. 주방의 말은 여러 목소리의 몸을 빌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