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발걸음」이 데려간 곳에서 다시 듣는 에메랄드 캐슬

노래방 번호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은 과거를 떠올리겠다는 결심보다 이미 어느 장소에 도착한 몸에서 시작하는 노래로 들을 수 있다. 잊었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공간을 만나 다시 현재가 되는 것이다. 제목은 작고 평범한 행동이지만 그 행동이 데려가는 곳은 가볍지 않다. 기억이 생각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걷는 몸과 연결될 때 이별의 감정은 더 구체적이 된다. 록발라드의 강한 목소리도 그 장소를 지나온 뒤에 듣는 편이 다르다. 먼저 되돌아온 발걸음이 있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다는 말에도 무게가 생긴다.
에메랄드캐슬 - 발걸음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7년 08월 03일]| KBS 방송
몸이 먼저 도착하고 마음이 뒤늦게 따라온다
어떤 곳을 다시 찾았다고 관계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바뀌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없는 사람을 또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 「발걸음」의 이동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으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다. 몸은 움직였지만 감정은 지난 시간과 다시 마주한다. 의식적으로 기억을 꺼낸 것과 길을 걷다 기억에 붙들리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 곡의 장소는 과거를 전시하는 배경보다 잊었다는 판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평범한 발걸음이 마음의 상태를 바꾸어놓는 순간이다.
과거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에도 그 과거를 계속 의식하는 시선은 남는다. 미련과 반발이 서로 반대편에만 놓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아직 아프다는 사실도 선명해질 수 있다. 이를 곧바로 회복의 이야기로 정리하면 곡 속 현재의 압박은 약해진다. 상처를 정리한 뒤의 말보다 아직 그 자리를 통과하는 말로 들을 필요가 있다. 화자의 감정에 공감하더라도 상대 역시 같은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답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큰 소리 안에서 함께 들리는 미련과 반발
목소리가 커질 때 여러 감정은 한꺼번에 바깥으로 나온다. 그리움만이라고 부르면 거친 반발은 놓치고 분노만이라고 하면 떠나지 못한 마음은 지워진다. 보컬의 힘은 둘을 깨끗하게 나누기보다 같은 소리 안에서 견디게 한다. 가창을 높은 음의 숫자로 환산하면 이런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말을 어디까지 밀어내는지, 그 뒤에도 무슨 감정이 남는지 따라갈 때 곡은 기량의 사례를 넘어 관계의 시간이 된다. 크게 소리 내었다는 사실과 마음이 풀렸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같지 않다.
밴드의 무게는 개인의 말을 더 큰 공간으로 옮기지만 그 말이 시작된 장소를 없애지는 않는다. 처음의 작고 구체적인 발걸음이 기억에 남아 있어야 뒤의 고조도 무작정 크게 들리지 않는다. 장소를 다시 만난 사람이 그곳에서 무엇을 떼어내고 싶은지 생각하면 음악의 힘에도 방향이 생긴다. 반주와 보컬을 나누어 어느 쪽이 더 강한지 듣기보다 어떻게 감정의 압력을 함께 만들고 있는지 들을 수 있다. 이 곡에서 소리의 확대는 마음이 이미 멀어졌다는 표시보다 아직 멀어지고 싶다는 바람에 가까울 수 있다.
멀어지는 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다시 같은 길을 걷더라도 매번 같은 기억에 똑같이 붙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 번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 이별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발걸음」의 여운은 떠나고 돌아오는 감정이 정돈된 순서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다. 노래가 끝난 뒤 장소는 그대로 남고 사람은 그곳을 다시 지나야 할 수 있다. 큰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처음의 작은 행동이 돌아온다. 발을 옮기는 일과 마음을 옮기는 일이 다른 속도로 일어난다는 감각이 그때 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