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떠난 뒤에 다시 들리는 더 넛츠의 「잔소리」

노래방 번호
더 넛츠의 「잔소리」는 곁에 있을 때 귀찮았던 말이 사라진 뒤 다른 무게로 돌아오는 노래다. 제목은 처음부터 따뜻한 표현을 고르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이제는 듣고 싶은 목소리의 흔적이 된다는 변화가 먼저 있다. 이별의 크기를 거대한 사건으로 증명하기보다 평범한 일상의 소리로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밴드의 힘과 커지는 보컬은 그 작은 말을 다시 멀리 부르지만, 사라진 것은 여전히 누군가가 곁에서 하던 말이다. 큰 음악과 사소한 기억의 크기 차이가 이 곡의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The Nuts - Nagging, 더 넛츠 - 잔소리, Music Core 20070127
말의 내용보다 누가 건넸는지가 남는다
같은 조언도 누가 어떤 관계에서 건네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곁에 있을 때에는 통제처럼 느껴졌던 말이 나중에는 자신을 생각해준 시간의 흔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잔소리가 사랑이었다고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노래 속 화자의 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상대가 한 말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더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의미를 달리한다. 이 곡은 관계의 가치를 추상적으로 말하기보다 부재가 기억을 다시 편집하는 순간을 일상적인 언어 하나로 보여준다.
함께 지낼 때 사람은 상대의 존재를 늘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말과 행동은 배경처럼 익숙해질 수 있다. 그 반복이 사라진 뒤에야 일상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알아차리기도 한다. 「잔소리」의 그리움도 큰 기념일보다 이런 빈자리에서 읽을 수 있다. 대단한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처럼 사소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범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지 않던 순간이 이별 뒤에는 오히려 관계의 중심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제목의 낯선 다정함을 만든다.
작은 말들을 큰 소리로 다시 부르기
보컬이 커질수록 떠올리는 말의 소박함은 더 또렷해진다. 작은 일상의 흔적을 넓은 공간으로 내보내는 인상이다. 강한 음악이 소재를 거대하게 바꾸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옆에서 하던 평범한 말을 이제 크게 부를 수밖에 없다는 거리감이 생긴다. 이때 가창의 강도를 감정의 진실성과 바로 같은 뜻으로 둘 필요는 없다. 무엇을 그 크기로 부르는지 듣는 편이 곡에 가깝다. 그리움은 소리가 커져서만 생기지 않고 그 소리로도 되돌릴 수 없는 일상이라는 사실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
이별을 알게 된 귀는 지난 말을 다른 마음으로 듣는다. 하지만 뒤늦은 그리움이 함께 있던 시절의 모든 불편함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귀찮았던 순간과 고마웠던 순간은 같은 관계 안에 있었을 수 있다. 그 둘을 남겨두면 곡은 떠난 사람을 완벽하게 꾸미는 회상보다 복잡한 기억의 노래가 된다. 지금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과거를 하나의 색으로 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일상의 구체적인 말이 있다는 점에서 청자는 자신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계를 음악 안에 놓을 수 있다.
귀찮음과 다정함을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기
다시 듣는 사람에게 제목은 여전히 조금 거친 단어다. 그 거침이 남아 있어야 뒤늦게 생긴 다정함도 선명해진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말이었다면 부재가 바꿔놓은 감각은 덜 보였을 것이다. 「잔소리」가 끝난 뒤 떠오르는 것은 완벽한 사랑의 문장보다 누군가 무심하게 건넸던 작은 말일 수 있다. 한때는 배경처럼 흘려들었던 목소리가 이제는 더 듣고 싶은 소리가 된다. 밴드의 울림이 사라진 뒤 곡은 그 작고 가까운 자리로 돌아온다. 있었을 때보다 없어진 뒤 더 크게 들리는 관계의 소리가 그곳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