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빌리 조엘 Piano Man, 술집의 사람들을 듣는 노래

노래방 번호
빌리 조엘의 「Piano Man」에서 피아니스트는 제목의 주인공이지만 노래의 시선은 그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술집에 들어온 사람들의 말과 바람을 하나씩 듣다 보면 연주자의 자리가 주변의 삶을 비추는 작은 관찰대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그 차이를 모두 해결하는 대신 노래해 달라는 후렴이 되돌아온다. 여기서 음악은 삶을 완전히 바꾸는 기적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잠시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활동으로 들린다.
Billy Joel - Piano Man (Official HD Video)
피아니스트 곁에 앉은 사람들
사람을 소개하는 대목에는 술집이라는 공간의 가까움과 각자의 삶을 알 수 없는 거리가 함께 놓인다. 누군가의 바람을 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짧게 전해지는 말과 표정이 한 인물의 바깥을 잠시 드러낼 뿐이다. 「Piano Man」은 그 단편들을 한 사람의 성공담을 위한 배경으로 지우지 않는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쌓일수록 연주자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보인다. 제목의 한 사람을 따라 들어갔다가 여러 사람의 삶을 마주하게 되는 시선의 이동이 노래를 넓혀 놓는다.
가사 속 사람들을 모두 실패한 꿈의 사례로 정리하면 장면의 생생함이 줄어든다. 그들은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말과 농담을 나누고 다른 시간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녁을 보낸다. 인물의 부족한 조건만 세는 대신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살피면, 술집은 절망의 표본실과 다른 공간이 된다. 「Piano Man」이 보여 주는 것은 완성된 인생의 평가보다 아직 이어지고 있는 생활이다. 피아니스트도 그 바깥의 심판자가 아니라 같은 시간에 일을 하며 그 목소리들을 듣는 사람으로 놓인다.
다른 사연이 같은 후렴을 청할 때
후렴의 노래해 달라는 요청은 흩어져 있던 사연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인물들이 같은 이유로 음악을 원하는 것은 아니어도 지금 멜로디가 필요하다는 마음은 나눌 수 있다. 이때 피아노는 개인의 기량을 전시하는 악기인 동시에 사람들의 주의를 함께 묶는 중심이 된다. 연주자를 향한 요청이 반복될수록 듣는 사람도 술집의 바깥에만 머물기 어렵다. 후렴을 알고 따라 부르는 행위는 그 장면 속 요청에 잠시 합류하는 경험이 된다. 관찰하는 노래와 함께하는 노래가 같은 흐름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음악이 사람들을 잠시 편하게 한다고 해서 그들의 문제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곡의 위로는 그 한계를 지울 때보다 남겨 둘 때 더 구체적이다. 노래가 끝나면 각자는 다시 자기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전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잠시 나올 수 있다. 피아니스트의 역할도 전부를 구해 주는 사람보다 그런 시간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 노래를 청하는 목소리에는 기대와 의존이 섞여 있고 연주자는 그 사이에서 일을 이어 간다. 낭만과 노동이 함께 놓인다는 점이 「Piano Man」의 장면을 단단하게 한다.
잠시 잊는 시간의 가치
「Piano Man」이 남기는 온기는 모두 행복해졌다는 마무리에서 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잠시 같은 노래를 청했다는 사실에 더 가까이 있다. 피아노 앞의 한 사람과 그 곁의 여러 사람이 각자의 자리를 유지한 채 같은 멜로디를 필요로 한다. 그 정도의 연결도 삶에서는 작지 않다. 다시 후렴으로 돌아오면 연주자를 향한 요청은 단순한 주문보다 오늘의 시간을 함께 보내 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빌리 조엘의 노래는 그 작은 요구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