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음반
이기찬 「감기」, 약국에서 다시 듣게 된 오래된 이별
약국 버스킹의 말장난 너머에는 2002년의 발라드가 있다. 「감기」의 이별 서사와 2026년 리메이크, 가수가 직접 찾아 나선 무대를 함께 듣는다.

노래방 번호
제목이 진짜 장소가 되었을 때
「감기」를 부르러 약국에 간다. 이기찬의 약국 버스킹은 설명이 길 필요가 없는 아이디어다. 이별의 고통을 병에 빗댄 노래 제목이 실제 의약품을 파는 공간과 만나는 순간, 오래된 발라드에 새로운 장면이 생긴다. 익숙한 가수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노래한다는 어긋남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6년 9월 19일 발표한 「감기(2026)」를 알리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곡이 나온 지 24년 뒤, 같은 가수가 자신의 곡을 다시 부른 것이다. 약국이라는 배경은 신곡 홍보의 입구지만, 영상을 음악으로 듣기 시작하면 결국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야 할 마음은 왜 그대로 아픈가.
이기찬 · 약국 버스킹 프로젝트 공식 에피소드
이기찬 LEE KI CHAN · YouTube에서 보기 ↗
기다릴수록 낫지 않는 마음
2002년 6집 《New Story II》에 실린 「감기」는 이기찬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제목은 짧고 일상적이지만 노래 속 상태는 가볍지 않다.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실에 맞춰 감정이 움직이는 일 사이의 차이가 곡을 붙잡는다.
가사의 중심에는 돌아올 가능성을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 상대가 기다리라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화자는 시간을 세고, 잊어보겠다는 결심 뒤에도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감기는 언젠가 회복되리라는 기대를 담는 비유인 동시에, 뜻대로 끝나지 않는 고통을 설명하는 이름이 된다.
후렴을 준비하는 목소리
「감기」는 도입부터 모든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후렴으로 향하는 거리를 남긴다. 낮은 음역에서 이어지는 문장은 말을 건네듯 시작하고, 선율이 위로 열릴 때 비로소 버티고 있던 감정이 드러난다. 이 곡을 높은 음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기면 그 앞에 놓인 망설임을 놓치게 된다.
후렴에서 중요한 것은 세게 부른다는 사실보다, 문장이 더는 담담하게 끝날 수 없는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긴 음을 향해 이어지는 호흡과 되풀이되는 선율이 화자의 미련을 같은 자리로 되돌린다. 그래서 감정의 절정 뒤에도 문제가 해결됐다는 안도는 오지 않는다. 노래는 여전히 회복을 기다리는 쪽에 남아 있다.
이기찬 · 「감기」 원곡 공식 MV · 1theK 재공개
1theK (원더케이) · YouTube에서 보기 ↗
24년 뒤, 자신이 다시 편곡한 노래
「감기(2026)」에서는 이기찬이 작사·작곡뿐 아니라 편곡도 맡았다. 유통사가 제공한 앨범 소개는 새 버전을 모던 록 사운드와 기교를 덜어낸 창법으로 설명한다. 기타는 허석, 베이스는 윤진원이 참여했다. 익숙한 멜로디를 그대로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곡을 받치는 연주의 질감과 노래를 전달하는 태도에 변화의 초점을 둔 리메이크다.
같은 사람이 부르는 리메이크의 흥미는 과거의 목소리를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는가에만 있지 않다. 이미 많은 청자의 기억 속에 들어간 선율을 지금 어떤 무게로 부를 것인가가 더 큰 질문이다. 원곡의 감정을 더 크게 부풀리는 대신 담백한 방향을 택했다는 제작 설명은, 이 노래를 추억의 복원만으로 듣지 않게 한다.
이기찬 · 「감기(2026)」 공식 음원
KiChanLee - Topic · YouTube에서 보기 ↗
무대를 기다리는 대신 찾아가는 가수
이기찬은 10월 1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약국 버스킹의 아이디어와 홍보 과정을 이야기했다. 예전처럼 음반을 내고 방송을 돌던 방식이 달라졌고, 직접 움직여 노래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노래 제목과 장소의 연결은 그 현실적인 판단에서 나온 셈이다.
이기찬 · 유 퀴즈 온 더 블럭 공식 인터뷰 · 2026.10.14 방송
유 퀴즈 온 더 튜브 · YouTube에서 보기 ↗
약국을 지나 다시 노래로
이번 화제는 예전의 히트곡이 새 청자를 만나는 경로가 꼭 대형 무대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짧은 영상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약국이지만, 원곡과 리메이크를 나란히 듣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익숙한 선율과 그 안의 끝나지 않은 감정이다.
「감기」의 제목은 웃을 수 있는 장소의 농담이 됐지만, 노래 자체는 여전히 이별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그 간극이 이번 버스킹을 단순한 복고 이벤트와 다르게 만든다. 제목으로 시작한 호기심이 한 곡을 다시 듣는 시간으로 이어질 때, 오래된 노래의 새로운 활동이 시작된다.
다음 무대는 미유의 서울 콘서트
이기찬은 11월 1일 열리는 카노우 미유의 서울 콘서트 《1999 ep 2026》에 게스트로 출연한다. 약국 버스킹으로 다시 관심을 모은 목소리를 이번에는 공연장에서 만날 차례다.